지난 11월 이영훈 목사는 30년, 35년 교회학교 교사로 근속한 이들에게 상을 수여했다. 이날 근속 교사들이 수상한 상은 하늘나라의 귀한 상급이었다. 이들이 가르친 아이들은 30대 40대가 되어 아직도 교사들을 찾아와 고마움을 전한다. 교사들은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을 통해 신앙이 성장했다며 감사했다. 수상자는 △35년 근속-강상규(아동3부) △30년 근속-정은주(유아부) 윤원식 성기숙(유치부) 이현숙(아동1부) 최옥경(아동5부) 김용석(아동6부) 표영수(중등3부) 김진숙 한혜숙(고등1부) 조미애(고등2부) 윤흥국 정현아(고등3부)이다. 또한 이날 정년을 맞은 교사도 공로상을 받았다.

“제자들이 장성해 찾아올 때 가장 감사하다”

주일 아침이면 서둘러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사실을 열고 들어가 아이들을 위한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다. “주여 오늘도 순복음의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웁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주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보다 더 달도록 그 마음에 주를 향한 사모함을 허락하소서” 아이들을 만나는 주일마다 기도는 쉬지 않고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 덧 30년, 35년의 세월이 흘렀다.

35년 근속 강상규 교사(아동3부)
“아이들 가르치며 함께 자란 신앙”

아동 3부 교사가 된 것은 1981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였다. 친구와 함께 교사가 되겠다고 찾아갔을 때 아동3부는 대성전 지하 1층 지금의 안디옥성전이었다. 젊은 교사가 둘 뿐이던 시절, 체육대회라도 열리면 금요철야예배를 마치고 그 준비로 바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왔던터라 성경지식도 부족했다. 오히려 아이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배우면서 내 신앙도 자랐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여름성경학교 준비였다. 부서별로 열리는 성경학교 준비로 보름전부터는 늦은 밤까지 남아 예루살렘성전을 아름답게 장식했던 일이 떠오른다. 부서간의 경쟁도 뜨거웠다. 아이들이 행복해했던 순간들이 기억난다. 처음 맡았던 아이들 중에는 조용기 목사님의 셋째 아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심방을 꼭 할 걸’이라는 후회도 든다. 지금은 교회학교 홍보를 위해 아이들이 베다니광장에서 찬양과 율동을 선보이지만 당시는 교사들이 율동 찬양으로 교회학교를 홍보했다. 모두들 열정적이었다.
35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강조했던 것은 ‘기도’였다. 믿음을 버리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붙잡고 나아가라고 가르쳤다. 그 아이들이 잊지 않고 찾아올 때면 교사에 대한 보람이 크다. 35년 전으로 돌아가도 나는 교사를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관심 가져주고 함께 놀아주는, 예배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교사이고 싶다.

30년 근속 윤원식 교사(유치부)
“성전 문 틈 사이로 나오는 아이들 소리에 이끌려 시작한 교사”

아이들을 좋아했던 나는 유치부 성전 문 틈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소리에 이끌려 교사가 됐다. 율동을 따라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애를 썼다. 순수한 아이들이 좋았다. 함께 놀아줄 수 있어 행복했다. 한주간 피곤해도 주일 아침 나를 보고 웃어주는 아이들을 보면 힘이 났다. 나에겐 아이들이 피로회복제였다.
장소가 부족해 주차장 한 쪽, 계단에서 공과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장로님들이 장로회실을 내주셔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공과할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하다. 대학생으로 장성한 제자들이 간혹 찾아와 인사할 때가 있지만 너무 커버려 알아보지 못할 때가 있어 미안하다. 아내 김선희 집사를 같은 유치부에서 만났고, 지금은 대학생인 딸이 유치부에서 교사로 우리와 함께 봉사하고 있다. 교사 가족이 된 것은 감사한 일이다. 처음 교사할 때 아이들의 눈망울이 기억난다. 지금도 아이들은 사랑스럽다.

30년 근속 이현숙 교사(아동1부)
“기도 없이 아이를 가르칠 수 없다”

고등 3부 선생님의 추천으로 아동 1부 교사가 됐다. 그때만해도 아동1부 아이들은 지금의 아이들과 달리 어렸다. 토하는 아이도 있었고, 코를 흘리는 아이도 많았다. 남동생만 둘이었던 나는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힘들지 않았다. 가르쳤던 아이들 중 10여 년 전 만난 ○○가 기억난다. 자폐를 앓던 아이는 의사 소통이 어려웠다. 장애아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 많이 힘들었지만 같은 반 아이들의 이해 속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지금 생각하면 더 잘 해주지 못한 미안함이 크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깨달은 것은 ‘교사는 영적으로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 내 힘으로는 부족하다. 늘 지혜를 구하자”고 기도했다. 집중 못하는 아이들도 기도한 후 가르치면 달라졌다. 30년 근속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애들아, 어떤 환경이든 하나님 떠나지 말고 하나님만 붙들고 살아가자”

30년 근속 최옥경 교사(아동5부)
“젖먹이 아이를 데리고 다시 시작한 교사 생활”

1976년 서대문에서 여의도로 교회를 옮긴 지 3년이 됐을 무렵 교사생활이 시작됐다. 고등부 때 이영훈 목사님이 찬양반을 지휘하셨던 기억이 난다. 당시는 초등학교 고학년을 묶어 초등부라고 불렀다. 처음으로 생긴 교사대학을 1기로 졸업했다. 대학 졸업과 취업으로 중단했던 교사를 다시 시작한 건 큰 아이 생후 9개월 때였다. 권사인 시어머니의 권유로 아동5부 교사를 시작했지만 젖먹이 아들이 마음에 걸렸다. 아침에 젖을 먹이고 나면 시어머니가 아들을 돌봐주셨고, 다시 젖먹을 시간이 되면 성전에 데리고 오셨다. 기도회가 끝나면 젖이 불어 가슴이 퉁퉁 부어 오른 적도 있었다.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배를 감추고 봉사에 나섰다. 당시는 사회적 분위기가 임신부에 대한 배려가 없던 때라 동료 교사들에게까지 임신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여름수련회 때는 3박 4일간 배를 움켜쥐고 가르쳤다.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그러한 헌신 덕인지 둘째 아이는 무척이나 똑똑했다. 큰 아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 나와 같은 아동 5부에서 악기 봉사로 10년간 활동했다.
아동 5부는 빠르면 사춘기가 시작되는 나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이런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 아이들에게 구원의 확신과 천국의 소망을 가르쳐야 한다. 간혹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해 ‘나는 죄를 많이 지어 지옥에 갈 것 같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오중복음 삼중축복의 말씀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르쳤다. 또 믿음의 사람을 세우신 이유를 설명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의 소중함을 가르쳤다. 30년의 세월을 돌아보면 오직 ‘감사’ 뿐이다.
우리는 내년에 맡을 아이들을 위해 부장 장로님을 비롯해 임원진이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중이다. 또 다시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30년 근속 표영수 교사(중등3부)
“중년의 나이가 돼 찾아온 제자”

지난 주 43살이 된 제자가 나를 찾아왔다. 내년에 아이가 중3이 된다며 선생님을 보기위해 찾아왔다는 것이다. 가슴이 뭉클했다. 30년 전 처음 교사로 봉사할 때 가르쳤던 강서분교 아이였다. 나는 강서 분교를 시작으로 군복무 후에는 김포분교(지금은 여의도순복음김포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분교 아이들은 믿음이 순수했다. 그리고 선후배 사이에 유대관계가 본교회 아이들보다 강했다.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목회자가 된 제자, 교회 직원이 된 제자도 있다.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고 기도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려 노력했다. 얼마 후면 새로운 아이들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설렌다. 아이들을 잘 품기 위해 기도하는 교사를 다짐한다. 강서성전에서 교회학교 피아노 반주로 봉사하는 딸을 보면 하나님께 감사하다.

30년 근속 정현아 교사(고등3부)
“마음이 아픈 아이들…사랑으로 품어야”

아동4부에서 17년, 한 때 교회학교 소속이었던 선데이스쿨(영어주일학교), 고등부 교사까지 벌써 30년이 됐다.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1년을 잘 버틸까 생각했는데 어느덧 시간이 흘렀다. 지나고 보니 아쉬움만 크다. 교사 첫 해 가르쳤던 아이들은 몇 년 전까지만해도 꾸준히 만났다. 다들 보고 싶다. 대학졸업 여행 중 새벽 첫 차를 타고 올라와 주일을 지켰던 기억도 난다.
고3 아이들을 맡으면서 아이들이 예배에 집중하지 않아 속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졸업 후 청년국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콩나물이 물을 먹고 쑥 크듯 안듣는 것처럼 보여도 아이들이 말씀을 먹고 잘 자랐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몇 해전에는 예배 중간에도 욕이 막 튀어나오는 아이들을 만나 힘들었다. 아이들을 찾아 학교 근처로 가서 햄버거를 사주며 대화를 나눴다. 교회에서 하지 않았던 가정사를 털어놨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가정 폭력 등 상처로 인해 아파하고 있었다. 내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은 처음 만나면 쉽게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의 아픔을 끌어안는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아가는 시기. 이때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가는 아이들이 생겨난다. 고3 일년 내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자고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언젠가 아이들이 지금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길 소망한다.

자료제공: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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